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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12] "위기극복 밑바탕은 '할 수 있다'는 조직원의 믿음"

신문 꼼꼼히 읽고 정보 꿰뚫는 '정보 경영'이 위기 예방 특효약 호시절엔 외부 정보에 둔감해져…전 임직원이 '정보 안테나' 돼야 관리 시스템 못 갖춘 중소기업, 50~60대 대기업 퇴직자 활용할 만 <참석자 명단> ▶박종원 동양철관 사장 ▶심임수 일진디스플레이 사장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사장 ▶홍기정 모두투어 사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 *가나다순 혹시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도움의 손길도 별로 없었다. 이를 악물고 혼자 견뎌야 했다. 마침내 버텨냈다. 본지 '턴어라운드-위기 딛고 선 기업들'에 나간 기업들이 그랬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고들 했지만 소중한 자산도 얻었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과 위기를 예방하는 지혜다. 본지는 시리즈에 소개된 턴어라운드 기업 중 4곳의 최고경영자(CEO)를 초청 이들이 생각하는 턴어라운드의 비결과 교훈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혹시 어디선가 위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지 전 임직원이 안테나를 곤두세우는 '정보경영'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조 사장(사회)= 요즘 기업들은 제품이든 서비스든 금방 새것을 내놓아야 한다. 게다가 전 세계와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다. 기업의 위기 요인이 도처에 널린 셈이다. 턴어라운드한 경험이 소중한 이유다. 턴어라운드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궁금하다. ▶황철주 사장= 조직 내부의 믿음이다. 나는 직원이 잘못하면 심하게 야단도 친다. 그러면서도 우리 선수(직원)들이 사회에서 존경 받게 만들고 싶다는 게 나와 회사의 뜻이라는 걸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선수들이 그걸 믿고 CEO가 제시하는 방향대로 따라줬다. 그 덕에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심임수 사장= 공감한다. 지난해 3월 일진디스플레이에 와 보니 직원들에게서 '우리 회사는 잘될 수 있다'는 믿음이 보이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적자에 허덕인 결과였다. 최대한 빨리 마인드를 바꾸는 게 필요했다. 마침 회사의 사업 분야인 LED와 터치스크린 시장이 쑥쑥 클 것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나름대로 대규모 선투자를 하고 인력도 대거 채용했다. 이를 본 직원들은 "어 우리 회사 되나 보다"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박종원 사장= 위기 때 조직원은 다른 곳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다닐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회사 될 수 있다. 성장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그때부터 직원과 회사는 완전한 운명공동체가 된다. 회사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기에 더욱 열심히 일하고 결국 기업도 턴어라운드하게 된다. ▶홍기정 사장= 모두투어는 매달 곳간을 철저히 열어 보이는 방법으로 믿음을 얻었다. "지금은 월급을 다 주지 못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경영을 해 회복된 뒤에 밀린 봉급을 전부 보상하겠다"고 했다. 직원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누가 그러더라. 곳간을 직원들에게 활짝 열어 보인 게 참 대단하다고. 그에게 반문했다. "사장이 혹시 딴 주머니 차지 않았을까 한 톨 의심도 하지 않은 직원들이 더 훌륭하지 않으냐"고. ▶이= 위기는 극복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CEO들에게 '정보경영'을 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신문을 꼼꼼히 보라고 한다. 정보를 많이 얻어야 그 속에서 위기의 조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턴어라운드 기업인으로서 위기 예방은 어떻게 하나. ▶황= 금융위기처럼 전체가 어려울 때는 오히려 위기가 아니라고 본다. 정부가 나서서 위기관리를 해주니까. 문제는 잘나갈 때다. 아무래도 나태해진다. 내부에 문제가 생긴다. 이건 치명타다. 외부로부터 온 위기는 내부만 튼튼하면 극복할 수 있지만 내부가 잘못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사가 잘될 때일수록 부단히 위기 점검을 해야 한다. ▶홍= 잘나갈 때는 아무래도 과투자를 하게 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시절이 좋을 때일수록 한번 더 따져보고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재 확보도 그렇다. 회사가 상황이 좋으면 신입사원을 뽑을 때 문패가 번듯한 인재들이 많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럴 때도 문패보다 과연 회사에 헌신할 사람인가를 살펴보려 노력한다. ▶심= 호시절엔 아무래도 외부 정보를 수집하는 데 둔감해진다. 하지만 요즘처럼 제품과 서비스의 수명 주기가 짧아지는 시대에 잠시만 한눈을 팔면 시장의 흐름을 놓친다. 항상 외부에 대한 센서를 가동해야 한다. ▶이= 어떤 은행은 행장 운전기사가 100억원 손실을 막아준 적이 있다. 친구인 거래처 사장의 기사로부터 우연히 "우리 회사 망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행장에게 보고해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전 임직원이 정보를 수집하는 안테나가 돼야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황= 벤처기업은 또 다른 종류의 위기도 맞는다. 기업이 커가면서 꼭 필요한 경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규모가 작을 때는 CEO가 이것저것 다 챙길 수 있지만 커지면 시스템을 구축해 관리해야 한다. 제품이 히트해 기업이 커져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바람에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벤처가 많다. ▶심= 시스템 구축 노하우를 가진 50~60대 대기업 퇴직 인력을 벤처나 중기에서 채용해 시스템을 만드는 데 활용하면 어떨까. 고령화 시대에 실버 세대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도 되고…. ▶박= 사회 풍토가 중기의 성장을 가로막는 측면도 있다. 20년 30년 계속 흑자를 낼 수 있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금융회사들은 중기가 한 번만 삐끗하면 얼른 채권을 회수하려고 든다. 위기를 이겨낼 역량을 갖췄는지 견뎌내면 더 튼튼한 기업이 될 것인지 등은 굳이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미래를 봐주면 좋겠다. '턴어라운드-위기 딛고 선 기업들' 실린 순서 1. 주성엔지니어링 2. 팬택 3. 대한생명 4. 모두투어 5. 리바트 6. 일진디스플레이 7. 현대미포조선 8. 화승그룹 9. 교보생명 10. 메디슨 11. 상보 12. 동양철관 정리=권혁주 기자

2010-06-04

[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12] 동양철관

주인 두번 바뀌고 외환위기 덮쳐…수주 가뭄에 침몰 일보 직전 노사 똘똘 뭉쳐 납기단축·기술개발…연매출 15%씩 성장에 흑자행진 '화불단행' 재앙은 늘 몰려다닌다고 했다. 수도.가스.송유관용 대형 강관 제조업체인 동양철관이 딱 그런 경우였다. 경영난에 몰려 주인이 바뀌었지만 바로 찾아온 외환위기에 다시 무너졌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살아나기 힘들겠다는 판단에 법정관리 대상이 됐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새 주인이 나섰다. 그러나 이번엔 노사 갈등이 번졌다. 5개월간의 장기 파업.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시장에선 모두들 "이젠 글렀다"고 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부활했다. 노사 갈등이 봉합된 뒤 지난해까지 매출은 쑥쑥 컸다.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를 내던 2008년에도 흑자를 기록했다. 동양철관 임직원들은 그 비결을 '신뢰 회복'이라고 표현했다. 극한 대립을 거쳐 되찾은 노사 간의 신뢰 이를 바탕으로 얻어낸 고객으로부터의 신뢰가 턴어라운드의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양철관은 1973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척이 세웠다. 나라가 하는 상수도.가스관 사업을 거의 도맡다시피 하며 호시절을 누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경쟁사도 하나 둘 생겨났다.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동양철관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다각화'를 새 성장전략으로 삼았다. 반도체 기업 알루미늄 새시 기업 등을 사들였다. 하지만 실패였다. 신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M&A 과정에서 은행 빚만 고슴도치 오이 걸머지듯 했다. 과도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할 상황에 몰렸다. 96년 결국 S그룹이 동양철관을 인수했다. 1년 남짓 지나 외환위기가 닥쳤다. 모 그룹인 S그룹 자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동양철관도 벗어날 수 없었다. 98년부터 2년여간 워크아웃을 진행했지만 '기업개선'은 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동양철관의 한 이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워크아웃 기업이라는 이유로 주문이 줄었다. 또 은행들이 자금 회수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투자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근근이 연명하면서 회사 분위기마저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았다." 워크아웃마저 실패였다. 2000년 법정관리가 결정됐다. 1년여가 흐른 2001년 말 이번엔 갑을상사그룹이 동양철관을 인수했다. 인수 초기인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붉은악마들이 붉게 수놓을 때 동양철관 직원들은 빨간 머리띠를 맸다. 새 주인과 처음 한 임금협상에서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회사는 더 어려워졌다. "저런 기업에 주문을 내면 제대로 된 물건을 제때 주겠느냐"는 인식이 퍼졌다. 워크아웃 때보다 더한 수주 가뭄에 시달렸다. 법정관리 중에도 3000원대를 오르내리던 주가는 액면가 500원에도 못 미치는 400원대로 내려앉았다. 시장에선 이 회사에 대해 기대를 접는 분위기였다. 변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룹 오너인 박유상 갑을상사 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공장을 찾아다니며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 힘을 합치자고 설득했다. 그러기를 2~3개월. 오너의 노력과 갈수록 심해지는 위기에 직원들도 마음을 바꿨다. 파업을 접었고 이듬해엔 임금협상을 아예 회사에 일임했다. 임금을 깎든 더 주든 회사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내부의 신뢰는 이렇게 다졌다.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기회도 찾아왔다. 98년 일찌감치 수주해 뒀던 부산 남항대교 건설공사에 자재용 강관 240억원어치를 납품할 때가 된 것이다. 노조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먼저 "하루 24시간 2교대로 일하면서 납기를 확 줄이겠다"고 제안했다. "저렇게 노사 갈등이 심한 회사가 납기나 제대로 지키겠느냐"는 세간의 평을 말끔히 씻어버리겠다는 각오였다. 2003년 5월부터 2004년 8월까지 1년3개월 예정이었던 납기를 6개월 단축했다. 이렇게 분위기가 잡히자 박유상 부회장은 전문 경영인을 물색했다. 다른 강관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박종원 현 사장을 2004년 6월 영입했다. 박 사장은 경쟁업체보다 품질 우위를 누릴 신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폴리우레아'란 물질을 안에 입혀 물의 오염을 막아주고 수명도 대폭 늘린 대형 수도관 등을 개발했다. 여기에 남항대교를 통해 다시 쌓은 시장의 신뢰 철강.파이프 업계의 호황까지 겹쳤다. 파업이 극에 달했던 2002년 396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441억원으로 3.6배가 됐다. 2003년부터는 줄곧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2008년 말 무역의 날엔 '30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금융위기로 모두 허리띠를 졸라맸던 2008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 사이엔 350억원을 투자해 초대형 강관 제조설비를 설치했다. 수출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박 사장은 "대형 강관 안에 세라믹을 입혀 내구성과 친환경성을 더욱 높인 수도관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 관계는 이미 선순환으로 턴어라운드했다. 임금협상의 무교섭 타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회사는 매년 흑자에 따른 성과급으로 이를 보상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박종원 사장 "사무실서 고함지르며 시끄럽게 일하라" 직원들 사기 잃을까 걱정…회사 분위기 살리기 우선 “취임 후 가장 먼저 직원들에게 주문한 게 ‘고함 좀 질러라. 사무실을 시끄럽게 만들어라’는 거였습니다.” 2004년 6월 동양철관에 ‘구원투수’로 영입된 박종원(사진) 사장. 경쟁 업체인 휴스틸의 사장을 지낸 그는 처음 동양철관에 와 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두 가지를 걱정했다고 했다. 하나는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직원들의 사기였다. 동양철관은 초대형 가스·수도관 등을 100% 주문 생산하는 회사. ‘좋은 제품을 납기에 맞춰 댈 수 있다’는 고객의 믿음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기업이었다. 다행히 그가 오기 전, 부산 남항대교 건자재를 발주받아 밤을 새워 만들어 댄 덕에 고객들의 믿음이 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대로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수년간 주인이 두 차례나 바뀌고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에 법정관리까지 거치며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얘기한 게 “사무실이 도떼기시장인 것처럼 시끄럽게 일하라”는 것이었다. 생산은 차질 없이 되고 있는지, 납품할 게 출발은 했는지 전화로 속삭이듯 확인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대도록 했다. 일이 넘쳐 회사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게 적중한 것일까. 분위기가 살자 경영 실적이 살아났다. 매출은 연평균 15%씩 늘었고, 흑자 행진이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동양철관은 흑자를 냈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가입 권유를 받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한때 키코로 대박을 쳤다는 기업이 많았지요. 하지만 본업으로 돈을 버는 게 좋은 기업이 아닐까 합니다.” 연구개발(R&D)을 통한 신제품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경쟁 업체가 많아져 품질 차별화가 필요했다”는 게 박 사장의 설명. 각종 신제품으로 정부의 우수 제품 인증 등을 따냈다. 최근에는 자동 용접 로봇을 자체 개발했다. 대형 수도관 등을 저 혼자 용접해 이어 나가는 로봇이다. 박 사장은 “이를 활용해 강관 생산 뿐 아니라 시공 쪽으로도 사업을 넓히고, 나아가 수자원 종합관리회사로 탈바꿈할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혁주 기자

2010-05-28

[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11] (주) 상보

원화가치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요즘에도 디스플레이용 필름 제조업체 ㈜상보는 환헤지를 하지 않는다. 일본과 대만의 패널업체에 수출하는 물량이 꽤 되는데도 헤지를 안 하는 이유가 뭘까. 김상근 대표이사는 "겁나서"라고 답했다. 상보는 2008년 키코 계약을 이행하느라 48억원을 썼고 대규모 적자를 봤다. 다행히 지난해엔 영업이 상당 부분 정상화됐다. 매출 1030억원 1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그러곤 환헤지와는 담을 쌓았다. 요즘 상보의 효자 상품은 '복합 광학시트'다. TV 액정화면(LCD) 광원(BLU)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다. BLU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LCD 패널의 뒷면에서 밝은 빛을 쏴주고 선명한 색상이 나오도록 해준다. 여기엔 보호시트.프리즘시트 등 여러 장의 필름이 겹겹이 들어가는데 상보는 이를 한 장의 필름으로 해결하는 기술을 LG전자와 함께 개발해냈다. 이 제품 하나로 지난해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미 주문이 쌓여 있어 올해 900억원의 매출을 회사는 예상한다. 특히 상보가 기대하고 있는 건 탄소나노튜브(CNT) 투명전극 필름이다. CNT는 지름이 1나노미터(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구리보다 전기가 1000배나 잘 통하면서 강철보다 100배나 강하다. 쓰임새가 많아 '꿈의 신소재' '21세기 나노 기술의 보석'으로 불린다. 상보는 이 소재를 터치스크린 패널에 곧 적용한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열풍에서 나타나듯 요즘 전자기기 제품은 터치스크린이 대세다. 상보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하면 향후 5년간 1조3000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현재 터치스크린에는 산화인듐주석(ITO) 필름이 사용되고 있는데 원천특허를 일본 회사가 보유하고 있어 전량 수입에 의존하거나 기술라이선스를 받아 한국에서 일부 생산하고 있다. 터치스크린 패널에 CNT 소재를 적용하는 기술은 한국전기연구원이 개발했다. 2008년 기술 개발 소식에 대기업을 포함해 20여 개 업체가 전기연구원의 기술 이전을 받겠다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기연구원이 기술 이전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뜻밖에도 중소기업인 상보였다. 한국전기연구원 이건웅 박사(혁신소재연구센터장)는 "당시 대기업을 포함해 여러 업체가 연락해 왔지만 대표이사(CEO)가 직접 뛰어 온 회사는 상보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중간 실무자나 임원이 하는 것보다 오너가 직접 뛰어다니니 의사결정이 빠를 수 밖에 없었고 이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상보의 코팅 전문기술도 도움이 됐다. 이 박사 팀이 개발한 'CNT 투명전극 제조 기술'은 디스플레이 분야의 핵심 소재인 투명전극을 하나의 코팅액으로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코팅액을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에 페인트 칠하듯 코팅해 투명한 얇은 막을 만들어 전기를 흐르게 하는 나노기술이다. 상보처럼 인쇄와 코팅으로 잔뼈가 굵은 기업이 제격이었다. CNT 소재가 최종 완성품이 아니라 중간부품인 만큼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적당한 아이템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상보에 기술 이전을 하고 얼마 안 있다가 키코 사태가 터졌습니다. 한때 상보가 어렵다는 소문이 돌아 걱정도 많았지만 성공 보장이 안 되는 신규사업인데도 김 대표의 의지는 한 번도 흔들려본 적이 없었어요. 안정적인 사업군이 있는데도 계속 새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감동 받았습니다."(이건웅 박사) 염료감응 태양전지도 상보가 신수종 사업으로 꼽고 있는 제품이다. 나노 기술과 유기염료를 이용해 고도의 에너지 효율을 갖도록 개발한 차세대 태양전지다. 색을 입힌 투명한 유리가 식물의 광합성 작용처럼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준다. 상보 김칠문 부장은 "햇빛이 약해도 발전효율이 높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원래 이름은 상보화학이었다. 200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건물 외벽이나 자동차 유리에 많이 쓰이는 적외선.자외선 차단 필름처럼 친환경 소재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화학'이라는 이름 탓에 공해산업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2007년 10월 코스닥 상장을 하는 과정에서도 사명이 또 바뀔 뻔했다. "회사 이름이 촌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코스닥에서 주목 받으려면 '○○테크' 같이 정보기술(IT) 분위기가 좀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름이 아니라 실적이 중요하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상보가 한눈팔지 않고 33년간 인쇄와 코팅 분야에만 뚝심 있게 파고들 수 있었던 것도 김 대표의 이런 고집 덕분이었다. 그랬던 그가 뒤늦게 사명 변경을 고민 중이다. 겉모습보다 실적이 중요하다는 신념이 바뀐 건 아니다. 인터넷 시대에 상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면 '상보(자세한 소식)'처럼 다른 뜻으로 뜨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주주들의 불만을 감안해서다. 인터뷰-김상근 상보 대표…약방의 감초 같은 100년 기업으로 키울 것 "기업은 생물, 조금만 방심해도 상하고 죽어버리죠" 휘청했다 살아난 기업, 뭔가 다른 데가 있다. 추락하다 다시 솟아오른 경영인, 남다른 비결이 있다. 기술과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표준화할 수도 없는 뭔가가 있는 법이다. 내공이랄까, 근성이라는 것 말이다. 2008년 대형 적자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회생한 ㈜상보와 이 회사의 김상근(60·사진) 대표이사가 바로 그런 사례다. 김 대표는 그해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에 KO 펀치를 맞았다. 한 해 매출(747억원)의 절반이 넘는 적자(441억원)를 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김 대표는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애물 정도로 여겼다. 30년간 사업하면서 겪었던 화재나 물난리처럼 말이다. 일단 그는 주력상품인 광학시트에 집중했다. 본업에서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필름코팅으로 쌓은 기술이 먹혀든 데다, 정보기술(IT) 경기의 훈풍도 불었다. 기술력과 잠재력, 그리고 기업의 평판을 인정한 금융회사들도 지원을 해줬다. 이어 그는 2009년 초 키코 계약을 이행하는 대신 한국씨티·SC제일·외환·국민은행 등 4개 은행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일부 남아 있는 키코 계약은 내년 초면 다 끝난다. 덕분에 지난해엔 영업이 상당 부분 정상화됐다. “그동안 키코를 포함해 네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엔 공장에서 불이 나기도 했고, 물난리를 겪은 적도 있습니다. 2000년 들어서는 일본 기업의 방해로 수십억원의 투자자금을 날려 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내공과 근성은 27세 때인 1977년 창업한 뒤부터 차곡차곡 쌓아 왔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힘들게 살던 그에게 창업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재산이라고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방 두 개짜리 집이 전부였다. 그는 모친을 설득해 살림을 방 하나에 몰고 남은 방 하나는 세를 줬다. 그렇게 해서 얻은 보증금 40만원으로 무작정 세상에 뛰어들었다. 제조업을 하고 싶었지만 그 돈으로는 작은 공장도 얻을 수 없었다. 필요한 기계를 구입하기에도 모자랐다. 결국 서울 중부시장에서 창고 같은 건물 일부를 빌렸다. 기계는 할부로 들여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그가 했던 사업은 비닐에 제품 정보를 인쇄해 납품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인쇄·코팅 사업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80년대 오디오·비디오제품용 포장재 필름으로 사업을 확장해 재미를 봤다. 상보는 지금도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미디어제품의 포장재 필름 분야에서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새 저장매체의 등장으로 테이프가 기울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발 빠르게 윈도필름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빌딩이나 자동차 유리의 겉면에 적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필름을 붙이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수요가 급증했다. 2000년대 들어 그의 사업본능은 디스플레이용 필름에 꽂혔다. IT의 발달로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 것이다. 전자제품은 가볍고 작고 얇아지는 추세인데, 여기엔 반드시 필름이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확신이었다. 또 상보는 처음부터 필름에 코팅하는 기술로 먹고살아온 기업이다 보니 3년간의 연구 끝에 2003년 디스플레이용 필름인 광학시트를 개발할 수 있었다. 김 대표의 의지와 회사의 기술력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 우물을 파면서도 발 빠르게 다양한 물길을 찾아낸 그의 내공, 자신의 사업 설명에도 물씬 담겨 있다. “좁혀서 나누면 ‘인쇄’고, 좍 펼치면 그게 ‘코팅’ 아닙니까. 인쇄 혹은 코팅이란 사람이 본 사물과 생각하는 모든 아이디어를 결합해 재현해내는 거죠.” 그는 사장실의 목재 테이블을 가리키며 “이것조차도 인쇄”라고 했다. 인쇄의 방법이 다를 뿐이지, 나무의 느낌이 나도록 표면을 처리하는 것 자체도 코팅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사업을 이렇게 정의하면 할 일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진다”고 했다. 그가 그리는 상보의 미래는 ‘작은 거인’이자 ‘100년 기업’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작은 거인’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 100년 이상 가는 기업으로 키워보겠습니다.” ‘100년 기업’의 조건으로는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열정을 꼽았다. “기업은 생물하고 똑같아요. 조금만 방심해도 상하고 죽어버리죠. 끊임없이 공들여 다듬어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어요.” 서경호 기자

2010-05-21

[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10] 메디슨

원조 벤처.이민화.초음파진단기…. '메디슨'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1990년대 후반 벤처 바람이 불던 시절 한국 대표적 벤처기업으로 떠올랐다가 급전직하하는 설움을 맛봤다. 2002년 1월 부도가 났고 같은 해 4월 코스피 시장서 퇴출됐다. 1998년 세계 처음 3차원(3D) 초음파진단기를 개발해 관심을 모았지만 무리한 투자에 시황 악화가 겹쳐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메디슨은 일반에 잊힌 수년 동안 살아 있었다. 아니 이제 부활하는 중이다. 기술력을 앞세워 전 세계 초음파 진단장비 시장점유율을 2002년 1%에서 2008년 8%로 끌어올리면서 2000억원 매출 고지를 회복했다. 영업이익도 2년 연속 300억원을 웃돌았다. 특히 3D 초음파 기기 시장에서는 미국 GE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메디슨의 손원길 부회장은 "2012년 매출 5억 달러에 영업이익률 30% 세계 초음파 진단장비 시장 3위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턴어라운드(위기 극복)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컴퍼니로 새롭게 도약 중"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갑작스레…= 2002년 메디슨의 부도에 대해 '무분별한 투자와 문어발식 경영'이란 지적이 많았다. 2000년 절정에 달한 한국 벤처투자 붐 이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서 유동성 위기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패인은 본업인 초음파 의료기기 분야의 부진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인력과 영업망 등 핵심 역량을 가다듬었다면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현재 경영진의 분석이다. 초음파 의료기기 경영의 부실을 털어내려고 벤처붐이라는 조류에 편승해 당시 많은 기업이 그랬듯이 잘못된 길을 걸었다. 사업성 분석을 면밀하게 하지 않고 튀는 아이디어에 막대한 돈을 퍼붓는 우를 범한 것이다. 결국 무분별한 문어발식 투자로 흘렀고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투자자금을 단기차입으로 조달하려다 보니 경영상태를 좋게 포장하기에 바빠 수익성을 도외시한 밀어내기식 판매가 횡행했다. 결국 부도와 함께 증시 상장 리스트에서 빠지고 말았다. ◆법정관리와 새 주인= 부도 직후 메디슨 직원들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당시 초음파진단기는 기술이 어렵고 판로 개척이 힘들어 연구개발은 물론 생산과 마케팅 인력이 모두 부족했다. 아울러 당시 외국계 글로벌 경쟁사는 한국 내 초음파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는 등 한국 의료기기 시장을 적극 확대해 나가는 중이었다. 또한 의료기기 업계가 아니어도 메디슨의 잘 훈련된 인력은 기술 중심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의 영입 1순위였다.메디슨의 400여 임직원은 아직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부도 이후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법원이 인원과 급여를 팍팍 줄이는 쪽으로 회생을 진행했다면 지금의 메디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부도 후에도 연구개발(R&D) 인력은 회사를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도 전보다 관련 인원이 50% 이상 늘었다. 연구비도 2002년 97억원에서 지난해에 242억원으로 증가일로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됐다. 기존의 3D 초음파 진단장비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잡음이나 신호 왜곡 등을 없앤 제품이 부도 맞은 이듬해인 2003년 11월에 출시됐다. 2006년에 마침내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2005년부터 메디슨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한 투자전문회사 칸서스파트너스가 지난해 41%로 최대주주가 됐다. 메디슨은 2004년 미국 시장에서 9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미국 산부인과 시장에서는 전체 2위다. 이 같은 해외 딜러망이 큰 강점이다. 법정관리 중에도 해외 딜러망은 공들여 관리했다. 매출의 80%가 수출에서 나오는 업체로선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적잖은 시련이었다. 의사결정 구조를 좀 더 효율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생겼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는데 의사결정이 신속하지 못해 유동성 위기를 겪은 것이다. 결국 지난해 4월 칸서스파트너스의 공동대표인 손원길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거듭된 혁신이 없으면 과거의 어려움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취임 후 1년간 조직 정비와 해외망 관리 등 경영혁신과 임직원 소통에 주력했다. 심재우 기자 ■애널리스트가 본 메디슨 GE·필립스 등과 경쟁…세계시장 8% 점유 고부가 초음파기기로…미국시장 마케팅 강화를 업계 순위 세계 5위. 세계시장 점유율 8%. 초음파 진단기기 업체인 메디슨의 현재 좌표다. 한국 중소기업으로는 보기 드문 성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더구나 메디슨은 GE·필립스·지멘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거대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이런 성과를 올렸다. 바탕은 기술력이다. 벤처 광풍이 불었던 1990년대 후반에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2002년 초 결국 부도를 냈지만, 그때에도 메디슨의 기술력은 톱 클래스에 가까웠다. 2000년엔 유수의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3차원 동영상 초음파 진단장치를 상용화하기도 했다. 법정관리를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개발(R&D) 인력과 매출액 대비 R&D 투자를 매년 늘리는 등 기술력 키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8%대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성장하는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과 함께 메디슨도 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성장세가 주춤하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의료기기 시장인 미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부분이 문제다. 유럽과 중남미 시장에서는 선전하고 있지만, 미국 점유율을 늘리지 않는 한 곧 성장의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메디슨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한편에선 중국이 쫓아오고 있다. 이미 10여개 업체가 초음파 진단기기 제조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슨보다 기술력은 뒤지지만 가격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아직까지 메디슨의 주력 제품은 가격이 비교적 싸고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이른바 ‘로 엔드(Low-End)’ 제품들이다. 중국이 머지않아 치고 들어올 분야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고부가가치 초음파 기기 쪽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또 한 차례 기술 도약이 필요한 시기라 하겠다. 아울러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도 메디슨이 안고 있는 숙제다. 신진오 신보종합투자 투자본부장

2010-05-14

[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9] 교보생명

회사 근육부터 혈관까지 분석        설계사 5만→2만 명으로 정예화 더 이상 진통제·항생제론 안 돼        일선 영업조직서 한때 반발 이익 중심으로 체질 개선            군살 빼니 매년 3000억 순이익 2000년 4월 충남 천안시 교보생명 연수원인 계성원. 대강당을 가득 메운 전국 지원단장과 간부사원 500명은 갑자기 스피커에서 나오는 긴급 뉴스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신창재 회장의 연설은 중단됐다. 장내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뉴스는 이어졌다. “금감원장은 교보생명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어 퇴출을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전국 지점에는 가입자들의 문의와 항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강당 안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윤수홍 당시 강릉지원단장은 "입 안이 바싹 타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뉴스 실제 상황이 아니었다. 곧 밝혀지긴 했지만 임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이는 극비리에 준비된 가상의 영상물이었다. 신창재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외주업체가 비밀리에 제작했다. 가상 뉴스가 끝난 뒤 신 회장이 말했다. "변하지 않으면 교보생명은 정말로 내일 망할지도 모릅니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한다는 대장정의 신호탄은 이렇게 쏘아 올려졌다. 교보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 때 2조4000억원의 자산 손실을 떠안았다. 대우.아시아자동차 등 대출을 해준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3월에는 주식시장 침체까지 겹쳐 254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교보생명도 정부의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높아졌다. 신 회장은 2000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보험업계의 문제점을 해부하듯이 뜯어봤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답게 그는 회사의 근육부터 혈관까지 샅샅이 분석했다. 그가 진단한 업계의 고질병은 외형 경쟁이었다. 이익이 나건 말건 몸집을 불려야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관행에 빠져 부실 판매 대충대충 판매가 비일비재했다. 한꺼번에 왕창 계약을 했다가 한 번에 해약하는 악순환도 되풀이했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병의 뿌리를 완전히 없애는 근원치료다." 종전에는 이상이 보이면 진통제나 항생제를 투여해 잠시 통증을 완화하거나 병의 진척을 막았다. 하지만 이런 치료로는 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는 회사의 체질을 외형보다는 이익 중심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문제는 일선 조직의 반발이었다. "보험 영업을 모르는 의사 출신 회장이 회사를 망가뜨린다"는 반발이 컸다. 그러나 그는 꺾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직원들을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추진력을 보였다. '이익중심 영업정착 실무조사단'을 만들어 조사에 들어갔다. 인사상의 어떤 불이익도 없다고 약속하면서 부실 조사를 한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보험 13회차 유지율은 60%에 불과했다. 보험에 가입한 뒤 1년 지나면 10중 4명이 이탈한다는 뜻이다. 허위계약도 있었고 고객의 서명을 받지 않은 계약도 나왔다. 결국 허울 뿐인 재무설계사를 정리했다. 한때 5만 명이나 됐던 재무설계사를 2만 명으로 정예화했다. 저축성 보험을 줄이고 보장성 장기보험 위주로 영업전략을 다시 짰다. 보험사 경영의 또 다른 축인 자산운용은 외부 운용사에 위탁했다. "떡은 떡집에 맡겨야 한다"는 게 신 회장의 지론이었다. 회사에 다시 신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단 한 개의 보험상품만 팔더라도 완벽하게 철저하게 했다. 고객들이 다시 교보생명을 찾기 시작했다. 13회차 보험유지율은 2005년부터 80%대로 뛰어올랐다. 당기순이익도 그해에 2319억원을 기록했다. 자기자본도 2005년에 1조4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3조5414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3월 결산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든 금융사가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도 교보만은 291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국내 생명보험업계에서 가장 많은 액수다. 이런 성과는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 재보험콘퍼런스에서 교보생명은 '아시아 최고 생명보험사' 상을 받았다. 2005년 발행했던 2500억원어치의 후순위채권도 지난 2일 모두 상환했다. 신 회장은 대표이사로 취임한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려고 했던 시기였죠." 그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교보생명 직원들이다. "별 경험이 없는 새내기 경영자를 믿고 힘써 주었던 직원들이 있었기에 회사의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임직원 간의 유대와 탄탄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교보생명은 2015년까지 총자산 100조원 당기순이익 1조원이라는 중장기 목표를 내걸었다. ■애널리스트가 본 교보생명 순이익 압도적 한국 1위, 자본총계 규모는 아직 작아…상장 통해 자본 늘려야 외형으로 볼 때 교보생명은 삼성생명에 이어 대한생명과 2위 자리를 다투는 보험사다. 연간 보험료 수입이 그렇다. 3월 말에 결산을 하는 이들 3개사의 2008년 4월 1일~2009년 3월 31일 보험료 수익은 삼성생명이 19조8300억원, 대한생명 10조5400억원, 교보생명 9조8900억원이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교보생명이 압도적인 1위였다. 2008년 4월~2009년 3월 교보생명의 순익은 2916억원으로 삼성생명(1130억원)의 두 배 반이며, 대한생명(830억원)의 세 배 반이다. ‘알찬’ 보험사인 것이다. 최고경영자(CEO)가 의사 출신(서울대 의대 교수)이라서일까. 2000년 신창재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뒤 체격(외형)보다는 건강과 체력(수익성)을 추구하는 경영을 펼친 결과가 지금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비단 교보생명만 아니라 삼성·대한생명에도 적용되는 얘기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외형과 내실이 함께 좋아질 것으로 본다. 이들이 예전에 유치했던 고금리 보험들이 만기 해지되면서 지출 부담이 줄어 수익성이 오르고 있다. 외형은 요즘 바람을 타기 시작한 퇴직연금과 함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은 오랜 기간 맡겨야 하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안정성이 높은 큰 회사를 고객들이 선호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퇴직 연금은 한 번 맡길 곳을 선택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 성격이 있어 빅3 보험사의 장기 수입원이 될 전망이다. 퇴직 연금 시장에서 교보생명 나름의 장점도 있다. 특유의 내실 경영은 안정성이 높은 회사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교보생명은 또 법인 영업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선전할 기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교보생명이 삼성·대한생명에 비해 부족한 점은 자본총계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자본총계란 자본금에 그간의 이익에서 생긴 잉여금 등을 더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자본총계가 지난해 말 시점으로 10조8500억원이고, 이번에 상장한 대한생명은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교보생명은 3조5400억원 정도다. 자본총계가 적으면 생보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급여력 비율’이란 수치가 아무래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과 비슷한 입장이 된다. 이걸 해소할 가장 유력한 방법은 상장을 위한 공모를 통해 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대한생명이 상장을 했고, 삼성생명도 상장을 앞둔 마당이다. 과연 교보생명은 어떤 선택을 할까. 김종윤 기자

2010-05-07

[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8] 화승그룹

98년 부도 뒤 과감한 구조조정       도요타·폭스바겐에도 납품 차 고무 부품 특화해 재기 발판        "수출품 불량·결품률 0%" 자랑 7년 만에 화의 탈출…올 매출 3조       베트남엔 세계 최대 신발공장 1980년대 '르까프' 운동화로 부산 신발산업을 이끌었던 화승그룹이 자동차 부품을 위주로 한 정밀화학 업체로 변신해 재도약하고 있다. 화승은 80년대 중반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신발 수출 하나로 재계 랭킹 22위(매출액 기준)까지 올랐다. 지금도 부산.경남지역을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지만 당시는 이 지역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화승은 98년 외환위기 때 그룹이 문 닫을 위기를 맞았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주력인 신발사업이 침체된 데다 금융.제지.전자로 무리하게 사업을 다각화했던 게 화근이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자금경색이 심화돼 모기업인 ㈜화승이 98년 흑자 부도를 냈다. 그룹 주력사들이 대부분 화의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고영립 회장이 그룹 경영을 맡았다. 1200명이던 직원을 300명으로 줄이고 제지.전자 등 본업에서 벗어난 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그 결과 2005년 1월 화의에서 벗어났고 98년 84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2조6686억원으로 늘었다. 국내외 22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화승그룹은 올해 매출이 3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자동차 부품사업으로 재기= 화승그룹의 재기에 효자 노릇을 한 회사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화승R&A다. 이 회사는 화승이 한창 잘나가던 80년대 초 자동차 부품사업부를 분사해 설립했다. 신발 사업이 호황일 때 미래에 대비해 별도 법인으로 키운 것인데 이후 자동차 산업의 호황을 타고 함께 성장했다. 그러고는 외환위기 이후 그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버팀목이 됐다. 화승R&A는 자동차용 고무 창틀 파워스티어링 호스 등 고무제품을 만든다. 고무 창틀은 자동차 트렁크 등 차체와 창문에 장착해 누수.외부소음.먼지 등을 차단하는 부품이다. 60도 이상의 고온이나 습기.폭설에서도 변화가 없어야 한다. 품질을 인정받아 2003년부터 도요타.폴크스바겐.크라이슬러 등 내로라하는 자동차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강윤근 자동차 본부장은 "2003년 도요타 렉서스에 제품을 수출한 이래 불량.결품률이 0%"라며 "자동차 부품사업은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데다 이익이 나기 시작하면 빠르게 늘어나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매출은 1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그룹 매출의 35% 안팎에 달한다. 화승R&A의 약진에는 노사 화합이 밑거름이 됐다. 2007년 납품가 인하 등의 여파로 분기 첫 적자를 냈다. 그러자 노조는 그해 4월 '노사 한마음 대회'를 열어 임금을 동결하고 감원 등 구조조정 권한을 경영진에 위임한다는 결의문을 회사 측에 전달했다. 고영립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도요타 노조가 1970년대에 회사에 파업권을 반납한 것과 비견할 만한 일"이라며 "이때 구조조정한 게 재도약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미래 먹을거리를 찾아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화승은 난관을 헤쳐나갈 인재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2006년 서울 서초동에 사무소를 냈다. 지방 근무자만 뽑아서는 우수 인재를 채용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서울 사무소에는 '미래경영전략팀'을 두고 외부 인재를 스카우트해 신수종 사업 전략을 짜고 있다. 화승은 그동안 주력사업으로 ▶자동차부품 ▶스포츠패션 ▶정밀화학 세 분야에 집중해 왔다. 앞으로는 새 먹을거리를 찾겠다는 생각이다. 2020년까지 그룹 전체 매출 목표를 10조원으로 정하고 ▶친환경 항균 바이오 ▶복합소재(기존의 금속재료를 대체하는) ▶중남미 자원개발 등 세 가지 신규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지난달에는 부산에서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향후 10년간 5000억원을 투자해 나노기술이 접목된 열전소자(열에너지와 전기에너지를 바꾸는 반도체)를 제조할 계획이다. 한국에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신발 공장은 모두 해외로 나갔다. 2003년 9월 가동을 시작한 베트남 신발공장은 월 100만 켤레의 리복 신발을 생산한다. 단일 신발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가동 1년6개월 만에 흑자를 낸 이 공장은 올해 2000억원 매출을 예상한다. 고 회장은 "르까프는 화승을 대표하는 고유 브랜드"라며 "앞으로 중국.유럽 백화점을 중심으로 신발과 스포츠 패션 판매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가 본 화승 R&A 현대·기아차 질주 따라 매출·이익 '쑥쑥' 선박 녹방지 사업 진출도 호재…원료인 국제유가 상승이 복병 화승그룹에 속한 화승R&A는 자동차 부품 회사다. 고무로 된 부품이 주요 생산품이다. 브레이크와 파워스티어링에 필요한 유압 호스, 유리창과 문 사이에 비가 새지 않도록 끼우는 고무인 ‘웨더 스트립’ 등을 만든다. 그 대부분은 현대·기아자동차의 국내외 공장에 납품된다. 화승R&A는 ‘르까프’ 브랜드의 부활과 더불어 화승그룹의 재기에 효자 노릇을 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매출과 이익이 쑥쑥 늘었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한파를 맞았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생산과 소비가 줄어 매출이 뒷걸음질할 수 밖에 없었다. 2008년엔 적자를 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현대·기아차의 질주와 함께 성장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현대·기아차를 따라 나간 중국·인도 현지법인이 호조다. 중국과 인도의 빠른 회복·성장에 현대·기아차 현지공장의 가동률이 거의 100%에 이른 덕이다. 부품을 가져다 쓸 곳이 바빠진 것이다. 화승R&A의 현지법인들은 올해 상당 폭의 흑자를 내 한국 본사에도 쏠쏠한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화승R&A는 지난해 한국윌슨월튼이라는 선박용 녹 방지 기술업체를 흡수 합병하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 다른 성장 동력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올해 매출은 껑충 뛸 것이지만, 복병이 하나 도사리고 있다. 국제 유가다. 이 회사 고무제품의 원료는 석유화학 물질이다. 국제 유가에 따라 원료비가 출렁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원료를 대는 석유화학업체들은 모두 대기업이어서, 가격 협상에서 화승 쪽이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 올해 경기가 회복되고 원유 수요가 늘어 지난해보다 원유 값이 뛸 것으로 예상된다. 제품 값에 원료비 상승분이 100% 반영되지 않는 한, 화승R&A로서는 이익률 감소가 불가피하다. 화승R&A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심거리다. 김태진 기자

201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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